초기 신라는 가야, 백제, 고구려, 일본과 접해 있는 작은 나라였다. 사방에서 국경을 맞댄 신라는 주변국으로부터 영토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여러 곳에 성곽을 쌓아야 했다. 경주에는 적군의 경주 진입을 막기 위해 궁궐과 성곽을 보호하기 위해 월성도 세워져 있다. 지금은 궁궐 주변에 흙과 돌로 쌓은 성벽이 일부 남아 있다. 동쪽의 명활산성, 서쪽의 서형산성, 남쪽의 남산성, 북쪽의 북형산성, 서북쪽의 부산성 등이 성곽을 이루고 있다. 경주의 성곽은 정상의 능선을 따라 축조되었다. 짧고 길이가 10km가 넘는 수백m의 성곽은 모두 방어용 돌로 만들어졌다. 남아있는 성곽 가운데 경주 동쪽에 명활산성이 축조되었다. 명활산성은 산등성이를 따라 조성되었으며 둘레는 약 6km이다. 이중 구조로 되어 있으며 지형에 따라..
경주는 시내 곳곳에 불교 유적지가 즐비하다. 황룡사는 대표적인 불교 유적지다. 비록 오늘날에는 부지와 목탑만이 세워졌지만, 황룡사는 신라에서 매우 크고 중요한 사찰이었다. 신라 24대 임금 진흥왕은 553년 황룡사 터에 궁궐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궁궐이 세워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황룡이 땅바닥에서 나타났다. 그 후 궁궐의 공사를 중단하고 절을 짓기 시작했다. 황룡사는 17년간의 공사 끝에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웅장한 절이었다고 한다. 황룡사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황룡사 구층 목탑이다. 황룡사 목탑은 선덕여왕이 세웠다고 한다. 연면적 약 500㎡, 측면 길이 22.2m, 높이 75m의 거대한 목탑이었다. 백제의 장인 아비지는 이 거대한 목탑을 세우는 데 크게 공헌하였다. 당시 신라의 생활수준은 건축뿐..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평야에 있는 큰 언덕 모양의 무덤을 많이 볼 수 있다. 경주의 왕릉은 작은 산을 연상시킬 정도로 규모가 커서 고대로부터 '조산'이라 불렸다. 경주에는 옛 통일신라를 다스리던 왕과 왕비, 귀족들이 잠들어 있던 무덤이 250여 곳에 이른다. 이 가운데 거대한 봉분이 있는 23호 왕릉과 나머지 무덤은 일반 무덤과 꼭 닮았다. 신라 왕들의 무덤은 대릉원 지역에 있다. 황남리 고분군, 노동리 고분군, 노소리 고분군, 오릉은 대릉원 지역에 속한다. 가장 흥미로운 왕릉 중 하나는 천마총이다. 정식 명칭은 155호분이지만 자작나무 껍질에서 천마도가 발견된 이후부터 천마총으로 불리고 있다. 천마총에는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마총에서는 금관, 현판, 장신구, 무기, 유리병, 그릇 등 ..